장자크 루소 · 한국어 번역

학문예술론

1부 전체

인간이 말하자면 무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이성의 빛으로 본래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짙은 구름을 모두 흩어 버리며, 자신을 넘어서고, 사유를 통해 하늘의 영역에까지 날아오르며, 태양처럼 거대한 걸음으로 광대한 우주를 두루 돌아보고, 그리고 더욱 위대하고 경이로운 일이지만, 다시 자기 내면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인간을 연구하고 자신의 본성과 의무와 목적을 알아가는 광경은 고귀하고 아름답다. 우리는 지난 몇 세대 동안 이 모든 기적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1

유럽은 태고의 야만 상태로 되돌아가 있었다. 지금은 이토록 크게 계몽된 이 지역의 주민들이 몇 세기 전만 해도 무지보다 더 나쁜 상태에 빠져 있었다. 단순한 무지보다 더 경멸스러운 학문적 은어가 지식이라는 이름을 빼앗아 차지하고, 지식의 회복에 거의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을 놓고 있었다.

2

사태는 사람들을 상식으로 되돌려 놓으려면 전면적인 혁명이 필요할 지경에 이르렀다. 마침내 그 혁명은 가장 예상하기 어려웠던 곳에서 일어났다. 우리 사이에서 학예가 부흥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학예의 영원한 재앙인 우둔한 이슬람교도였다. 콘스탄티누스 제위의 몰락은 고대 그리스의 유산을 이탈리아로 가져왔고, 이 귀중한 전리품으로 프랑스도 뒤이어 풍요로워졌다. 학문은 곧 문학의 뒤를 따랐고, 사유의 기술은 글쓰기의 기술과 결합했다. 이 순서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울 뿐이다. 이제 세상은 뮤즈들과 교류하는 데서 오는 주된 이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 인정할 만한 작품으로 상대를 기쁘게 하려는 욕망을 품게 함으로써 인간을 더욱 사교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3

정신에도 육체와 마찬가지로 필요가 있다. 육체의 필요는 사회의 토대이고, 정신의 필요는 사회의 장식이다.

4

정부와 법률이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안녕을 보장하는 동안, 그보다는 덜 전제적이지만 어쩌면 더 강력한 예술과 문학과 학문은 사람들을 짓누르는 사슬 위에 꽃으로 엮은 화환을 던져 놓는다. 그것들은 인간이 누리도록 태어난 듯한 본래의 자유에 대한 감각을 가슴속에서 질식시키고, 자신을 예속하는 상태를 사랑하게 하며, 그렇게 하여 이른바 문명화된 국민으로 만든다.

5

필요가 왕좌를 세웠고, 예술과 학문이 그것을 굳건하게 만들었다. 지상의 권력자들이여, 모든 재능을 소중히 여기고 그 재능을 연마하는 이들을 보호하라.[1] 문명화된 민족들이여, 그러한 활동에 힘쓰라. 행복한 노예들이여, 그대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취향의 섬세함과 정교함, 그대들 사이의 교류를 그토록 쉽고 즐겁게 만드는 온화한 성품과 세련된 예절, 한마디로 덕을 하나도 지니지 않으면서도 모든 덕을 갖춘 듯한 외양은 모두 그러한 활동 덕분이다.

6

아테네와 로마가 그토록 자랑하는 찬란하고 장엄한 시대에 두드러졌던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세련됨 때문이었다. 그것은 꾸민 티가 덜 날수록 더욱 매혹적이다. 우리 시대와 우리나라가 모든 시대와 민족을 능가하게 될 것도 의심할 여지 없이 같은 점에서일 것이다. 현학적이지 않으면서도 철학적인 풍모, 게르만인의 투박함과 이탈리아인의 과장된 몸짓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자연스럽고 매력적인 태도, 이것이 인문적 학습으로 얻고 세상 사람들과의 교제로 다듬은 취향의 효과이다. 우리의 겉모습이 언제나 마음을 비추는 참된 거울이라면, 예의 바름이 곧 덕이라면, 우리가 공언하는 격률이 우리 행동의 규칙이라면, 진정한 철학이 철학자라는 칭호와 분리될 수 없다면, 우리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그러나 그토록 많은 좋은 자질이 함께 갖추어지는 일은 너무나 드물다. 덕은 그처럼 화려하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일이 드물다.

7

호화로운 옷차림은 부유한 사람임을 드러내고 우아한 옷차림은 취향 있는 사람임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참된 건강과 씩씩함은 다른 징표로 알아볼 수 있다. 육체의 힘과 활력을 찾으려면 궁정인의 금박과 번쩍이는 장식 아래가 아니라 노동자가 입은 손수 짠 투박한 옷 아래를 살펴야 한다.

8

외적인 장식은 정신의 힘이자 활동인 덕에도 그 못지않게 이질적이다. 정직한 사람은 벌거벗은 채 겨루기를 좋아하는 투사이다. 그는 자신의 힘을 발휘하는 데 방해가 되며, 대개는 어떤 결함을 감추려고 고안되었을 뿐인 그 온갖 비천한 치장을 경멸한다.

9

기교가 우리의 행동을 빚어내고 우리의 정념에 인위적인 언어로 말하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는, 우리의 풍속은 투박했으나 자연스러웠다. 또한 저마다 다른 행동 방식은 한눈에 각자의 성향이 다르다는 것을 드러냈다. 인간의 본성이 그때라고 해서 지금보다 근본적으로 더 선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서로의 속을 쉽게 꿰뚫어 볼 수 있다는 데서 안전을 얻었으며, 이제는 우리가 그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이 이점 덕분에 많은 악덕을 피할 수 있었다.

10

더욱 정교한 연구와 더욱 세련된 취향이 남을 기쁘게 하는 기술을 하나의 체계로 만들어 놓은 오늘날에는, 현대의 예절에 비굴하고 기만적인 획일성이 지배하고 있다. 그리하여 모든 정신이 같은 틀에서 주조된 듯이 보인다. 공손함은 이것을 요구하고, 예의범절은 저것을 요구한다. 의례에는 그 형식이 있고 유행에는 그 법칙이 있으며, 우리는 언제나 이것들을 따라야 하고 결코 우리 자신의 본성이 이끄는 바를 따라서는 안 된다.

11

우리는 더 이상 감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며 끊임없는 속박 아래 놓여 있다. 그러는 동안 우리가 사회라고 부르는 인간의 무리는, 아주 특별하고 강력한 동기가 가로막지 않는 한, 같은 상황에서 모두 똑같이 행동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을 상대하고 있는지 결코 알지 못한다. 심지어 친구를 알려고 해도 위급하고 절박한 어떤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다시 말해 너무 늦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순간에야 그러한 앎이 우리에게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12

이러한 불확실성에는 얼마나 많은 악덕이 줄을 이어 따르겠는가! 진실한 우정과 참된 존경, 완전한 신뢰는 사람들 사이에서 추방되었다. 질투와 의심, 두려움과 냉담함, 속내를 감추는 태도와 증오와 기만은 공손함이라는 저 획일적이고 기만적인 베일 아래 늘 숨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시대의 계몽과 지도 덕분에 얻었다고 자랑하는 솔직함과 세련된 예의이다. 우리는 더 이상 맹세하면서 창조주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성모독으로 그분을 모욕할 것이며, 그토록 까다로운 우리의 귀도 그것을 거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겸손해져서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의 공적을 깎아내리는 데는 거리낌이 없다. 우리는 적에게조차 노골적으로 모욕을 가하지는 않지만, 교묘하게 그들을 중상한다. 다른 나라들에 대한 우리의 증오는 줄어들지만, 애국심도 그와 함께 죽어 간다. 무지는 경멸을 받지만, 위험한 회의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실제로 어떤 악덕들은 비난받고 또 어떤 악덕들은 불명예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악덕이 덕이라는 이름으로 존중받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들을 지니거나 적어도 지닌 척해야만 하게 되었다. 누가 우리 시대 현자들의 절제를 찬양하든, 내 눈에 그것은 세련되게 다듬은 방종일 뿐이며, 그들의 꾸민 소박함과 마찬가지로 내가 찬양할 가치가 없다.[2]

13

이것이 우리의 풍속이 도달한 순수함이며, 이것이 우리가 우리 것으로 삼은 덕이다. 학문과 예술은 이 유익한 사업에 자신들이 얼마나 기여했는지 주장해 보라. 나는 한 가지 생각만 더 덧붙이겠다. 어떤 먼 나라의 주민이 학문의 상태, 예술의 완성도, 공공 오락의 단정함, 우리 행동의 공손함, 대화의 상냥함, 끊임없이 표명하는 호의, 그리고 아침부터 밤까지 서로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듯한 온갖 계층 사람들의 떠들썩한 모임을 보고 유럽의 풍속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려 한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그러한 이방인이 우리의 도덕에 관해 전적으로 잘못된 견해에 이르게 되리라고 단언한다.

14
요약과 연결된 부분

결과가 없는 곳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결과가 확실하고 타락이 현실로 존재한다. 예술과 학문이 발전함에 비례하여 우리의 정신은 부패해 왔다. 이것이 현시대에만 고유한 불행이라고 말할 것인가? 아니다, 여러분, 우리의 헛된 호기심에서 비롯되는 폐해는 세상만큼이나 오래되었다. 매일 밀려들고 빠져나가는 조수가 달의 영향을 받는 것 못지않게, 한 민족의 도덕은 예술과 학문의 진보에 규칙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그 빛이 우리의 지평선 위로 떠오름에 따라 덕은 자취를 감추었으며,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현상이 끊임없이 관찰되었다.

15

인류 최초의 배움터인 이집트를 보라. 놋쇠 같은 하늘 아래서도 비옥하기로 이름난 그 오래된 나라, 한때 세소스트리스가 세계를 정복하러 출정했던 그곳을 보라. 이집트는 철학과 순수예술의 어머니가 되었다. 머지않아 이집트는 캄비세스에게 정복되었고, 그 뒤로 차례로 그리스인, 로마인, 아랍인, 그리고 마침내 튀르크인에게 정복되었다.

16

한때 아시아를 두 번이나 물리친 영웅들이 살았던 그리스를 보라. 아직 유년기에 있던 문예는 주민들의 성품을 부패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학문의 진보는 곧 풍속의 방종과 마케도니아의 멍에를 가져왔다. 그때부터 그리스는 언제나 학식이 풍부하고, 언제나 쾌락에 빠져 있으며, 언제나 노예인 채로, 그 모든 변혁 속에서도 주인이 바뀌는 것 이상을 경험하지 못했다. 데모스테네스의 그 모든 웅변으로도 사치와 예술이 이미 쇠약하게 만든 몸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는 없었다.

17

목자가 세우고 농민들이 영광스럽게 만든 로마가 타락하기 시작한 것은 엔니우스와 테렌티우스의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나 오비디우스, 카툴루스, 마르티알리스,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정숙한 이가 얼굴을 붉힐 만한 그 밖의 수많은 음란한 작가들이 나타난 뒤, 한때 덕의 성소였던 로마는 악덕의 무대가 되었고, 여러 민족의 멸시를 받았으며, 심지어 야만인들에게까지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처럼 세계의 수도는 마침내 자신이 남들에게 씌웠던 노예의 멍에에 굴복했으며, 그 몰락의 날은 바로 자국 시민 한 사람에게 ‘훌륭한 취미의 심판자’라는 칭호를 부여한 날의 전날이었다.

18

그 위치로 보아 세계의 수도가 될 운명인 듯했던 동로마 제국의 저 대도시에 관해서는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겠는가? 예술과 학문이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추방되었을 때, 어쩌면 야만성보다는 지혜 때문에 추방되었을 때, 그것들의 피난처가 되었던 그 도시에 관해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하겠는가? 가장 방탕한 주색, 가장 극악무도한 악행, 가장 잔혹한 범죄와 음모, 살인과 암살이 콘스탄티노폴리스 역사의 날실과 씨실을 이룬다. 현시대가 그토록 자랑하는 지식의 홍수가 우리에게로 흘러나온 맑은 원천이 바로 이러하다.

19

그러나 현재가 풍부한 증거를 제공하는 진리의 증명을 어째서 지난 시대에서 찾아야 하겠는가? 아시아에는 학문이 존중받으며 국가의 가장 높은 관직에 이르는 길이 되는 광대한 제국이 있다. 학문이 우리의 도덕을 개선한다면, 우리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조국의 이익을 위해 목숨을 바치도록 가르친다면, 중국인들은 지혜롭고 자유로우며 무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행하지 않는 악덕이 없고 그들에게 낯선 범죄가 없다면, 대신들의 명민함과 지혜롭다고 여겨지는 법률, 그리고 그 광대한 제국을 채운 수많은 주민이 모두 무지하고 거친 타타르인의 멍에로부터 그들을 지켜 내지 못했다면, 그들의 학자와 문인들이 무슨 소용이 있었는가? 그 나라는 학자들에게 베푼 영예로부터 어떤 이익을 거두었는가? 악한들과 노예들로 이루어진 종족이 사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 그 이익일 수 있겠는가?

20

이러한 사례들과, 쓸모없는 지식의 전염으로부터 보호받아 자신의 덕으로 스스로 행복해지고 나머지 세계에 모범을 보인 소수 민족의 풍속을 대조해 보라. 초기 페르시아인들이 그러했다. 이 민족은 매우 독특하여, 우리가 학문을 가르치듯이 덕을 가르쳤다. 그들은 아주 쉽게 아시아를 정복했으며, 자신들의 정치 제도의 역사가 철학적 소설로 여겨졌다는 독보적인 영광을 누린다. 우리에게 그토록 놀라운 찬사가 전해 내려오는 스키타이인들도 그러했다. 독일인들도 그러했다. 그들의 소박함과 순진함과 덕은, 개명하고 부유하며 향락에 젖은 민족의 비열함과 악행을 묘사하는 데 지친 역사가의 붓에 더없이 유쾌한 대조를 제공했다. 로마조차 가난하고 무지하던 시절에는 그러했다. 우리 시대에도 저 소박한 민족은 자신이 그러함을 보여 주었다. 마땅히 명성을 누리는 그들의 용기는 역경조차 꺾을 수 없었고, 그들의 신의는 어떠한 본보기로도 타락시킬 수 없었다.[3]

21

이 민족들이 정신의 활동보다 다른 활동을 더 좋아한 것은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다른 나라에 최고선에 관하여, 또 악덕과 덕에 관하여 헛되이 논쟁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들은 이 쓸모없는 사상가들이 자신에게는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다른 민족들은 야만인이라고 경멸하며 낙인찍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람들의 풍속을 살펴보고, 그들의 학식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를 배웠다.[4]

22

바로 그리스의 한복판에, 법의 지혜로움 못지않게 주민들의 행복한 무지로 유명한 도시가 생겨났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의 덕이 평범한 인간의 덕보다 그토록 뛰어나 보였기에, 인간보다는 반신들의 공화국이라고 할 만한 곳이었다. 학문의 헛됨을 영원히 증명하는 스파르타는, 아름다운 예술의 인도를 받아 악덕이 아테네에 들어오고 있던 바로 그때, 아테네의 참주가 시인들의 으뜸가는 이의 작품을 정성껏 수집하고 있던 바로 그때, 예술가와 예술, 학자와 학문을 성벽 밖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23

그 차이는 결과에서 드러났다. 아테네는 세련된 예절과 취미의 중심지, 웅변가와 철학자의 나라가 되었다. 건축물의 우아함은 언어의 우아함과 맞먹었다. 어디를 보아도 가장 솜씨 좋은 예술가들의 손에서 생명을 얻은 대리석과 화폭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아테네로부터 저 경탄할 만한 작품들을 물려받았으며, 그것들은 모든 타락한 시대에 모범이 될 것이다. 라케다이몬의 모습은 그토록 화려한 색채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웃 민족들은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덕스러웠으며, 고향의 공기가 그들에게 덕을 불어넣는 듯했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 주민들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영웅적 행위에 대한 기억뿐이다. 이 기념물들은 우리의 눈에 아테네의 대리석으로 된 가장 진기한 유물보다 못한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24

물론 아테네인들 가운데에도 세상의 거센 흐름에 맞서, 뮤즈들과 어울리면서도 자신의 고결함을 지킨 소수의 현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으뜸이자 가장 불행했던 사람이 당대의 예술가들과 학자들에게 내린 판단을 들어 보라.

25

그는 말한다. “나는 시인들을 살펴보았다. 나는 그들을 자신의 재능으로 자신과 남을 모두 속이는 사람들로 여긴다. 그들은 스스로 현자를 자처하고 또 그렇게 받아들여지지만, 실제로는 현자와는 거리가 멀다.”

26

소크라테스는 계속 말한다. “시인들에게서 나는 예술가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나보다 예술에 무지한 사람은 없었으며, 예술가들이 놀라운 지식을 지녔다고 나보다 더 굳게 확신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곧 그들도 시인들과 다를 바 없는 처지이며, 양쪽 모두 똑같은 오해에 빠져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 가운데 가장 솜씨 좋은 이들은 자기 분야의 일에서 남보다 뛰어나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나머지 모든 인간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내 눈에는 이 오만함이 그들의 모든 솜씨를 망쳐 놓았다. 그리하여 나는 신탁의 입장에 서서, 지금의 나로 있는 것과 그들처럼 되는 것 중 어느 쪽을 더 원하는지, 그들이 아는 것을 아는 것과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중 어느 쪽을 더 원하는지 스스로 물었다. 그리고 나 자신과 신을 대신하여, 나는 지금의 나로 남기를 더 원한다고 기꺼이 대답했다.

27

“우리 가운데 누구도, 소피스트도 시인도 웅변가도 예술가도 나 자신도 참된 것, 선한 것, 아름다운 것의 본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이런 차이가 있다. 이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도 모두 무언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내가 무지하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탁이 나에게 부여한 지혜의 우월함이란 결국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지하다고 확신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28

이처럼 우리는 신의 판단으로는 인간 가운데 가장 지혜롭고, 온 그리스의 생각으로는 아테네인 가운데 가장 학식 있는 소크라테스가 무지를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가 지금 살아 있다 해도, 현대의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그의 생각을 바꾸게 하리라고 여길 근거는 거의 없다. 아니다, 여러분, 그 정직한 사람은 여전히 우리의 헛된 학문들을 끈질기게 경멸할 것이다. 그는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책들의 홍수를 불리는 데 조금도 힘을 보태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그랬듯이 우리에게도 오직 자신의 덕행의 모범과 기억만을 남길 것이다. 이것이 인류를 가르치는 가장 고귀한 방법이다.

29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시작한 일을 대 카토는 로마에서 이어받아, 동료 시민들의 덕을 타락시키고 용기를 무너뜨리는 저 매혹적이고 교묘한 그리스인들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러나 교양이 승리를 거두었다. 로마는 철학자와 웅변가들로 가득 찼고, 군기는 소홀히 여겨졌으며, 농업은 멸시받았고, 사람들은 학파를 형성하고 조국을 잊었다. 자유, 사심 없음, 법에 대한 복종이라는 신성한 이름들을 에피쿠로스, 제논, 아르케실라오스라는 이름들이 대신했다. 심지어 로마의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학자들이 나타난 이래 정직한 사람들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말이 돌았다. 그 이전에 로마인들은 덕을 실천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들은 덕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파멸했다.

30

파브리키우스의 위대한 영혼이 불행히도 다시 생명으로 불려 돌아와, 자신의 무력으로 파멸에서 구해 내고 자신의 명예로운 이름으로 그 모든 정복보다도 더 큰 영광을 안겨 준 로마의 사치와 장려함을 보았다면 무엇을 느꼈겠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신들이여! 한때 절제와 덕이 깃들어 살던 저 초가지붕과 소박한 화덕들은 어찌 되었는가? 고대 로마의 검소함을 대신한 이 치명적인 호화로움은 무엇인가? 이 이국의 언어와 나약해진 풍속은 무엇인가? 이 조각상과 그림과 건물들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어리석은 자들이여, 그대들은 무슨 짓을 했는가? 세계의 지배자인 그대들이, 스스로 정복한 경박한 민족들의 노예가 되었구나. 그대들은 수사학자들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그리스와 아시아의 땅을 그대들의 피로 적신 것도 오직 건축가와 화가와 조각가와 배우들을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서였구나. 카르타고의 전리품마저 피리 부는 자의 차지가 되었구나. 로마인들이여! 로마인들이여! 서둘러 저 원형극장들을 허물고, 저 조각상들을 산산이 부수고, 저 그림들을 불태워라. 그대들을 예속시키고 그 치명적인 기예로 그대들의 풍속을 타락시키는 저 노예들을 그대들 가운데서 몰아내라. 그런 헛된 재능으로 이름을 떨치는 일은 다른 이들의 손에 맡겨라. 로마에 합당한 유일한 재능은 세계를 정복하고 덕이 그 세계를 다스리게 하는 재능이다. 키네아스가 로마 원로원을 왕들의 모임으로 여겼을 때, 그를 감탄하게 한 것은 쓸모없는 사치도 공들여 꾸민 우아함도 아니었다. 그는 그곳에서 오늘날 경박한 웅변가들이 연구하고 매혹되는 저 공허한 웅변을 전혀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키네아스가 목격한 위엄은 무엇이었는가? 동료 시민들이여, 그는 하늘 아래 일찍이 존재한 가장 고귀한 광경, 그대들의 모든 부와 예술로도 보여 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곧 로마에서 명령하고 세계를 통치하기에 합당한, 덕 있는 사람 이백 명의 모임이었다.”

31

그러나 시대와 장소의 차이는 제쳐 두고, 우리 시대와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자. 아니, 우리의 섬세한 감정을 상하게 할지도 모르는 불쾌한 묘사들은 물리치고, 이름만 바꾸어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수고는 하지 말자. 내가 파브리키우스의 망령을 불러낸 것은 까닭 없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그의 입을 빌려 한 말 가운데 루이 12세나 앙리 4세의 입에서도 똑같이 적절하게 나올 수 없었을 말이 무엇인가? 프랑스에서라면 소크라테스가 독미나리 독배를 마시지는 않았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그보다 한없이 더 쓴 물약, 죽음보다 백 배나 더 고약한 모욕과 조롱과 경멸의 물약을 마셨을 것이다.

32

이처럼 사치와 방탕과 예속은 모든 시대에 걸쳐, 섭리의 지혜가 우리를 놓아두었던 저 행복한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우리의 오만한 노력에 내려진 재앙이었다. 섭리가 자신의 모든 작용을 덮어 둔 저 두꺼운 장막은, 섭리가 우리에게 그처럼 헛된 탐구를 하도록 뜻한 적이 없다는 충분한 증거인 듯하다. 그러나 섭리가 우리에게 가르친 교훈 가운데 우리가 올바르게 활용한 것이, 혹은 소홀히 하고도 벌을 면한 것이 과연 하나라도 있는가? 어머니가 아이의 손에서 위험한 무기를 빼앗듯, 자연은 인간을 학문으로부터 지켜 주려 했다는 것을 인간은 이제라도 배워야 한다. 자연이 감추는 모든 비밀은 그만큼 많은 해악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것이며, 인간이 지식을 얻는 데서 겪는 어려움 자체도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은혜 가운데 결코 작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사악하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학식이 있는 불행을 겪었더라면 훨씬 더 사악했을 것이다.

33

이러한 성찰은 인류에게 얼마나 굴욕적이며, 우리의 자존심은 이로 인해 얼마나 꺾여야 마땅한가! 뭐라고! 그렇다면 정직함은 무지의 자식인가? 덕은 학식과 양립할 수 없는가? 하고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이런 가정에서 대체 어떤 결론인들 끌어내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이처럼 겉으로 모순되어 보이는 것들을 조화시키려면, 인간의 지식에 그토록 아낌없이 부여되며 우리의 판단을 그토록 눈멀게 하는 저 거창한 칭호들이 얼마나 공허하고 허망한지 면밀히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학문과 예술 그 자체를 고찰해 보자. 그것들의 진보에서 필연적으로 무엇이 생겨나는지 살펴보고, 우리의 논증이 역사에서 끌어낼 수 있는 귀납적 결론과 일치하는 모든 점에 대해서는 그 진실성을 주저 없이 인정하자.

34

주석

[1] 군주들은 금은의 국외 유출을 초래하지 않는 오락과 사치를 위한 예술에 대한 취향이 신민들 사이에서 퍼지는 것을 언제나 기쁘게 바라본다. 그들은 인위적인 욕구의 증가가 예속에 걸맞은 왜소한 정신을 기를 뿐 아니라, 인민에게 그만큼 더 많은 사슬을 채운다는 것을 아주 잘 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크티오파고이족을 종속 상태에 붙들어 두고자, 그들에게 고기잡이를 포기하고 문명국 사람들이 통상 먹는 음식으로 살아가도록 강요했다. 벌거벗고 다니며 오로지 사냥의 산물로 살아가는 아메리카의 야만인들은 언제나 정복이 불가능했다. 사실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슨 멍에를 씌울 수 있겠는가?

35

[2] 몽테뉴는 말했다. “나는 대화하고 논쟁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극소수의 사람들과, 오직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그렇게 한다. 권세가들을 즐겁게 하거나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기 위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내 생각에 명예를 아는 사람에게는 몹시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면, 이것이 우리 지식인 모두의 직업이다.

36

[3] 나는 우리가 억누르기 어려워하는 수많은 악덕의 이름조차 몰랐던 저 행복한 민족들에 대해서는 감히 말하지 않겠다. 아메리카의 야만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몽테뉴는 그들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통치 방식을 플라톤의 법률뿐 아니라 철학이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통치의 이상상보다도 주저 없이 더 높이 평가했다. 그는 그 가치를 헤아릴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깊은 인상을 주는 여러 사례를 인용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인가, 그들에게는 바지 한 벌조차 없는데! 하고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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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테네인들은 그 판결에 대해서는 그들의 신들조차 항소하지 않았던 저 공정한 법정에서 과장된 변론을 몰아내려고 그토록 주의를 기울였으니, 그들 자신이 웅변에 대해 품었던 진정한 생각은 무엇이었다고 보아야 하는가? 로마인들은 공화국에서 의술을 추방했을 때 의사들을 어떻게 생각했던가? 또 에스파냐인들에게 남아 있던 인간성의 흔적이 그들로 하여금 자국의 법률가들이 아메리카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금지하게 했을 때, 그들은 법학을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그들은 이 한 가지 방책만으로 불행한 인디언들에게 저지른 온갖 폭행을 보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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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D. H. Cole 영문 번역 · 1920년 수록판 · 프랑스어 원전(1750)

School of Thought · AI 초벌 번역 및 편집 · 위 영문판을 바탕으로 옮겼습니다.

바탕이 된 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