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 한국어 번역
수사학
1권 2절 전체
수사학은 주어진 어떤 경우에서든 이용할 수 있는 설득 수단을 식별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은 다른 어떤 기술의 기능도 아니다. 다른 모든 기술은 저마다 고유한 대상에 관하여 가르치거나 설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술은 건강에 좋은 것과 해로운 것에 관하여, 기하학은 크기의 성질에 관하여, 산술은 수에 관하여 그러하며, 다른 기술과 학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사학을 우리에게 제시되는 거의 모든 주제에 관하여 설득 수단을 식별하는 능력으로 본다. 그러므로 수사학은 기술로서의 성격상 특수하거나 한정된 어떤 부류의 주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1설득 방식 가운데 어떤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수사학의 기술에 속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후자란 연설자가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주어져 있는 것들, 곧 증인, 고문으로 얻은 증언, 서면 계약 등을 뜻한다. 전자란 수사학의 원리를 통하여 우리 스스로 구성할 수 있는 것들을 뜻한다. 한쪽은 그저 활용하면 되지만, 다른 쪽은 고안해야 한다.
2말을 통하여 마련되는 설득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연설자의 인품에 달려 있고, 둘째는 청중을 특정한 심리 상태에 놓이게 하는 데 달려 있으며, 셋째는 연설의 말 자체가 제공하는 증명이나 외견상의 증명에 달려 있다. 연설이 연설자를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 연설자의 인품을 통한 설득이 성립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선한 사람들을 더 온전히, 더 기꺼이 믿는다. 이것은 어떤 문제가 논의되든 일반적으로 참이며, 정확한 확실성을 얻을 수 없고 의견이 갈리는 경우에는 전적으로 참이다. 이러한 설득도 다른 설득과 마찬가지로 연설자가 말하는 내용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가 말하기 전에 사람들이 그의 인품에 관하여 갖고 있던 생각에 의해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일부 저술가들이 수사학 논저에서 가정하듯이, 연설자에게서 드러나는 선한 인품이 그의 설득력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인품은 그가 지닌 가장 효과적인 설득 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로, 연설이 청중의 감정을 움직일 때에는 청중을 통하여 설득이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가 기쁘고 우호적일 때 내리는 판단은 괴롭고 적대적일 때 내리는 판단과 같지 않다. 우리가 주장하듯이, 오늘날 수사학 저술가들은 바로 이러한 효과를 낳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이 주제는 감정을 논할 때 상세히 다룰 것이다. 셋째로, 해당 사안에 적합한 설득력 있는 논증을 통하여 진실이나 진실로 보이는 것을 증명했을 때에는 연설 자체를 통하여 설득이 이루어진다.
3그러므로 설득을 이루는 수단에는 이 세 가지가 있다. 이를 능숙하게 다루려는 사람은 분명히 (1)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어야 하고, (2) 인간의 성품과 선함의 다양한 형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3) 감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곧 감정의 이름을 대고 그것을 서술하며, 그 원인과 감정이 일어나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 이로써 수사학은 변증술뿐 아니라 윤리 연구에서도 갈라져 나온 분야임이 드러난다. 윤리 연구는 정치에 관한 연구라고 불러도 타당하다. 이 때문에 수사학은 정치학으로 가장하고, 수사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정치 전문가로 가장한다. 때로는 교양의 부족 때문에, 때로는 과시욕 때문에, 때로는 인간의 다른 결함들 때문에 그렇게 한다. 사실 수사학은 처음에 말했듯이 변증술의 한 갈래이며 그것과 유사하다. 수사학도 변증술도 별개의 어느 한 대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은 아니다. 둘 다 논증을 마련하는 능력이다. 그 범위와 서로의 관계에 관한 설명은 아마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4증명이나 외견상의 증명으로 이루어지는 설득에 관해서 말하자면, 변증술에 한편으로 귀납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삼단논법이나 외견상의 삼단논법이 있듯이 수사학에서도 그러하다. 예증은 귀납이고, 생략삼단논법은 삼단논법이며, 외견상의 생략삼단논법은 외견상의 삼단논법이다. 나는 생략삼단논법을 수사학적 삼단논법이라 부르고, 예증을 수사학적 귀납이라 부른다. 증명을 통해 설득하는 사람은 누구나 실제로 생략삼단논법이나 예증을 사용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그리고 무엇이든 증명하는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삼단논법이나 귀납을 사용하므로, 생략삼단논법은 삼단논법이고 예증은 귀납이라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따라 나온다. 이는 『분석론』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해진 사실이다. 예증과 생략삼단논법의 차이는 귀납과 삼단논법을 이미 논의한 『토피카』의 대목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러 유사한 사례를 근거로 어떤 명제를 증명할 때, 이를 변증술에서는 귀납이라 하고 수사학에서는 예증이라 한다. 어떤 명제들이 참이면 그 결과로 그것들과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명제도 언제나 또는 대체로 참일 수밖에 없음을 보일 때, 이를 변증술에서는 삼단논법이라 하고 수사학에서는 생략삼단논법이라 한다. 이러한 연설 유형 각각에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내가 연설의 유형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방법론』에서 한 말이 여기에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어떤 연설 양식에서는 예증이 우세하고 다른 양식에서는 생략삼단논법이 우세하다. 마찬가지로 어떤 연설가는 전자에 더 능하고 다른 연설가는 후자에 더 능하다. 예증에 의존하는 연설도 다른 종류의 연설만큼 설득력이 있지만, 생략삼단논법에 의존하는 연설은 더 큰 박수갈채를 불러일으킨다. 예증과 생략삼단논법을 어디서 얻고 어떻게 적절히 사용하는지는 나중에 논의할 것이다. 다음으로 할 일은 이 절차들 자체를 더욱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다.
5어떤 진술이 설득력이 있고 믿을 만한 것은 그것이 직접 자명하기 때문이거나, 자명한 다른 진술들로부터 증명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든 그것이 설득력이 있는 까닭은 그것에 설득되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기술도 개별 사례를 이론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예컨대 의술은 무엇이 소크라테스나 칼리아스의 치료에 도움이 될지를 이론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특정 부류에 속하는 어느 환자에게나 또는 모든 환자에게 무엇이 치료에 도움이 될지만을 다룬다. 이것만이 의술의 소관이다. 개별 사례는 한없이 다양하므로 그것들에 관한 체계적 지식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수사학 이론은 소크라테스나 히피아스 같은 특정 개인에게 무엇이 개연성 있게 보이는지가 아니라, 특정 유형의 사람들에게 무엇이 개연성 있게 보이는지에 관심을 둔다. 이는 변증술에도 해당한다. 변증술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의 망상 같은 아무렇게나 고른 자료로 삼단논법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논의할 만한 자료로 구성한다. 수사학 역시 통상적인 논쟁의 주제들을 다룬다. 수사학의 임무는 우리를 이끌어 줄 기술이나 체계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숙고하는 사안들을, 복잡한 논증을 한눈에 파악하거나 긴 추론의 연쇄를 따라갈 수 없는 사람들이 듣는 자리에서 다루는 것이다. 우리가 숙고하는 대상은 서로 다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안들이다. 과거에도 달리 될 수 없었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지금과 다를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그러한 성격을 지녔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숙고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6앞선 삼단논법의 결과들로부터 삼단논법을 구성하고 결론을 이끌어 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처럼 증명되지 않았으며 동시에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아 증명이 필요한 전제들로부터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전자의 추론은 그 길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사유 훈련을 받지 않은 청중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후자의 추론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거나 믿어지지 않는 전제들에 근거하므로 동의를 얻지 못할 것이다.
7그러므로 생략삼단논법과 예증은 대체로 달리 될 수도 있는 일들을 다루어야 하며, 이러한 일들에 관하여 예증은 귀납이고 생략삼단논법은 삼단논법이다. 생략삼단논법은 소수의 명제들로 이루어져야 하며, 흔히 보통의 삼단논법을 구성하는 명제들보다 그 수가 적어야 한다. 이 명제들 가운데 어떤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면, 그것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이 스스로 그것을 덧붙인다. 따라서 도리에우스가 우승 상품으로 관을 주는 경기에서 승리했음을 보이려면, ‘그는 올림피아 경기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누구나 아는 사실인 ‘그리고 올림피아 경기의 우승 상품은 관이다’를 덧붙일 필요가 없다.
8수사적 삼단논법의 토대가 될 수 있는 ‘필연적’ 유형의 사실은 거의 없다. 우리가 결정을 내리고, 따라서 탐구하는 일들의 대부분은 여러 가능성을 지닌다. 우리가 숙고하고 탐구하는 것은 우리의 행위에 관한 것이며, 우리의 모든 행위는 달리 될 수도 있는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필연성에 의해 결정되는 행위는 거의 없다. 또한 ‘필연적’ 결론은 ‘필연적’ 전제들에서 도출되어야 하듯이, 단지 대체로 그러하거나 가능할 뿐인 것을 진술하는 결론은 그와 같은 성격의 전제들에서 도출되어야 한다. 이 점 역시 『분석론』을 통해 우리에게 명백하다. 따라서 생략삼단논법의 토대를 이루는 명제들 가운데 일부는 ‘필연적’일 수 있지만, 대부분은 대체로 참일 뿐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생략삼단논법의 재료는 개연성과 징표이며, 이들은 각각 대체로 참인 명제들과 필연적으로 참인 명제들에 대응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개연성이란 대체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정의들이 시사하듯 대체로 일어나는 일이면 무엇이든 개연성인 것은 아니며, ‘달리 될 수도 있는 것’ 또는 ‘가변적인 것’의 부류에 속하는 경우에만 그러하다. 개연성은 그것이 개연적이라고 여겨지는 개별적인 일에 대하여 보편자가 개별자에 대해 갖는 것과 같은 관계를 맺는다. 징표 가운데 한 종류는 그것이 뒷받침하는 진술에 대하여 개별자가 보편자에 대해 갖는 것과 같은 관계를 맺으며, 다른 종류는 보편자가 개별자에 대해 갖는 것과 같은 관계를 맺는다. 오류의 여지가 없는 종류는 ‘완전한 증거’(tekmerhiou)이며, 오류의 여지가 있는 종류에는 특별한 이름이 없다. 오류의 여지가 없는 징표란 엄밀한 의미의 삼단논법이 토대로 삼을 수 있는 징표를 말한다. 이로써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징표를 왜 ‘완전한 증거’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말한 것이 반박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자신들이 ‘완전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는 그 사안이 이제 논증되어 완결되었다(peperhasmeuou)는 뜻이다. ‘페라스’(perhas)라는 말은 고대 언어의 ‘테크마르’(tekmarh)라는 말과 같은 의미, 곧 ‘끝’ 또는 ‘경계’라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제 첫 번째 종류의 징표, 곧 그것이 뒷받침하는 명제에 대하여 개별자가 보편자에 대해 갖는 관계를 맺는 징표는 다음과 같이 예시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지혜롭고 정의로웠다는 사실은 지혜로운 사람들이 정의롭다는 징표이다’라고 말한다고 하자. 여기에는 분명 징표가 있다. 그러나 그 명제가 참이라 하더라도, 이 논증은 삼단논법을 이루지 않으므로 반박될 수 있다. 반면에 ‘그에게 열이 있다는 사실은 그가 병들었다는 징표이다’ 또는 ‘그녀에게 젖이 나온다는 사실은 그녀가 최근에 아이를 낳았다는 징표이다’라고 말한다고 하자. 여기에 있는 것은 오류의 여지가 없는 종류의 징표이며, 완전한 증거를 이루는 유일한 종류이다. 제시된 개별 진술이 참이라면 반박할 수 없는 것은 이 종류뿐이기 때문이다. 다른 종류의 징표, 곧 그것이 뒷받침하는 명제에 대하여 보편자가 개별자에 대해 갖는 관계를 맺는 징표는 ‘그가 숨을 빨리 쉰다는 사실은 그에게 열이 있다는 징표이다’라는 말로 예시할 수 있다. 이 논증 역시 숨을 빨리 쉰다는 진술이 참이라 하더라도 반박될 수 있다. 열이 없어도 숨을 가쁘게 쉴 수 있기 때문이다.
9이로써 개연성, 징표, 완전한 증거의 본성이 무엇이며, 이들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앞에서 밝혔다. 『분석론』에서는 이러한 점들이 더욱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다. 거기에서는 이러한 추론들 가운데 어떤 것은 삼단논법의 형식으로 제시할 수 있고 어떤 것은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보여 준다.
10‘예’가 귀납의 한 종류라는 점은 이미 설명하였으며, 그것을 다른 종류의 귀납과 구별해 주는 대상의 특수한 성격도 앞서 밝혔다. 예가 뒷받침하는 명제와 맺는 관계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도, 전체와 부분의 관계도, 전체와 전체의 관계도 아니라, 부분과 부분의 관계 또는 유사한 것과 유사한 것의 관계이다. 두 진술이 같은 부류에 속하지만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잘 알려져 있을 때, 더 잘 알려진 쪽이 ‘예’가 된다. 가령 디오니시오스가 지금처럼 호위대를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 참주가 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기 때문이라는 논증을 들 수 있다. 과거에 페이시스트라토스도 그러한 음모를 실행하려고 줄곧 호위대를 요구하였으며, 호위대를 얻자마자 실제로 참주가 되었기 때문이다. 메가라의 테아게네스도 그렇게 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화자에게 알려진 다른 모든 사례도 예로 삼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 곧 디오니시오스가 같은 요구를 하는 데에는 같은 목적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모든 사례는 호위대를 요구하는 사람은 스스로 참주가 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하나의 일반 원리에 속하는 사례들이다. 이로써 우리는 일반적으로 논증적이라고 여겨지는 설득 수단들의 원천을 설명하였다.
11두 종류의 생략삼단논법 사이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완전히 간과해 온 중요한 구별이 있다. 이 구별은 변증술에서 다루는 삼단논법들 사이에도 존재한다. 한 종류의 삼단논법이 본래 변증술에 속하듯이, 한 종류의 생략삼단논법은 본래 수사학에 속한다. 그러나 다른 종류는 우리가 이미 행사하고 있거나 아직 습득하지 못한 다른 기술과 능력에 본래 속한다. 사람들은 이 구별을 놓치기 때문에, 특정 대상을 더 정확하게 다룰수록 순수한 수사학이나 변증술에서 그만큼 더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진술은 좀 더 충분히 설명하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변증술적 삼단논법과 수사학적 삼단논법에 고유한 대상은 우리가 통상적 또는 보편적 논거의 틀이 다룬다고 말하는 것들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올바른 행위, 자연학, 정치학, 그리고 서로 아무 관계도 없는 그 밖의 많은 것에 관한 문제에 똑같이 적용되는 논거의 틀이다. 가령 ‘더 많음과 더 적음’에 관한 논거의 틀을 보자. 이 논거의 틀에 근거하면 올바른 행위나 자연학 또는 그 밖의 무엇이든, 본질적으로 서로 무관한 대상 가운데 어느 것에 관해서도 똑같이 쉽게 삼단논법이나 생략삼단논법을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사물의 집단이나 부류에만 적용되는 명제에 근거한 특수한 논거의 틀도 있다. 따라서 자연학에 관한 명제 중에는 윤리학에 관한 어떠한 생략삼단논법이나 삼단논법의 근거로도 삼을 수 없는 것들이 있으며, 윤리학에 관한 다른 명제들 가운데에는 자연학에 관한 어떤 추론의 근거로도 삼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같은 원리가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 일반적 논거의 틀에는 특수한 대상이 없으므로, 그것은 특정 부류의 사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증진하지 않는다. 반면 특수한 논거의 틀에 적합한 명제들을 더 잘 골라낼수록,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증술 및 수사학과 구별되는 하나의 학문을 세우는 데 더 가까이 다가간다. 필요한 원리들을 진술하는 데 성공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그 학문은 더 이상 변증술이나 수사학이 아니라, 그처럼 발견된 원리들이 속하는 학문이 될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생략삼단논법은 이러한 개별적 또는 특수한 논거의 틀에 근거하며, 공통적 또는 일반적 논거의 틀에 근거하는 것은 비교적 적다. 그러므로 앞서와 마찬가지로 이 저술에서도 생략삼단논법을 다룰 때에는 그것의 근거가 되는 특수한 논거의 틀과 일반적 논거의 틀을 구별해야 한다. 특수한 논거의 틀이란 각각의 사물 부류에 고유한 명제들을 뜻하며, 일반적 논거의 틀이란 모든 부류에 똑같이 공통되는 명제들을 뜻한다. 우리는 특수한 논거의 틀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우선 수사학을 그 종류에 따라 분류하자. 그 종류들을 구별한 다음에는 하나씩 다루면서, 각각이 어떤 요소들로 구성되며 어떤 명제들을 사용해야 하는지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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