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한국어 번역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8장 전체
악에 무력으로 저항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오늘날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1그리스도교는 규칙 체계가 아니라 새로운 인생관이며, 따라서 강제되는 것도 아니었고 모든 사람이 그 참뜻을 받아들인 것도 아니며 소수만이 받아들였다—더욱이 그리스도교는 이교적 삶의 파멸을 예언하며,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도 예언한다—악에 무력으로 저항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한 측면이며,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이를 필연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모든 분쟁을 해결하는 두 가지 방법—첫째 방법은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악의 보편적 정의를 찾아내어 그 악에 무력으로 저항하는 것이다—둘째 방법은 무력으로는 전혀 저항하지 않는 그리스도교의 방법이다—첫째 방법의 실패는 그리스도교 초창기부터 인정되었지만, 그 방법은 여전히 제안되었으며, 인류가 진보함에 따라 악에 관한 보편적 정의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오늘날에는 모두가 이를 인정하며, 여전히 무력으로 악에 저항한다면 그것은 이제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피할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그것을 피하기 어려운 까닭은 정부의 무력 사용이 교묘하고 복잡한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폭력은 네 가지 방식으로 사용된다. 위협, 매수, 최면, 그리고 무력에 의한 강제이다—정부를 무력으로 전복한다고 해서 국가의 폭력이 사라질 수는 없다—사람들은 이교적 생활 방식이 낳는 고통으로 인해 무력으로 저항하지 말라는 교리를 포함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에 이르게 된다—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이 가르침이 진리라는 의식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게 할 것이다—이 의식은 우리의 삶과 완전히 모순된다—이는 의무 병역에서 특히 명백하지만, 습관과 국가가 사용하는 네 가지 폭력 수단 때문에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와 군인의 삶 사이의 이러한 모순을 보지 못한다—당국 스스로 군인 의무의 부도덕성을 더없이 명확하게 드러내는데도 사람들은 이를 보지 못한다—징집은 모든 사람에게 최고의 시험이다. 그때 그는 무력으로 저항하지 말라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거나 기존 국가 조직에 노예처럼 복종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신성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버리고 정부의 요구에 복종하며, 그 밖에는 어떤 길도 없는 듯이 보인다—이교적 인생관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그 밖의 길이 없으며, 전쟁의 참상이 아무리 커져도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그러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멸망할 수밖에 없으며, 어떠한 사회 개편도 그것을 구할 수 없다—이교적 삶은 극한에 이르렀으며 스스로를 파멸시킬 것이다.
2그리스도교가 진리라면 출현하자마자 모든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였어야 하며, 사람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켰어야 한다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이는 씨앗이 여물었다면 즉시 줄기와 꽃과 열매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3그리스도교는 폭력으로 강요하여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법 체계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새롭고 더 높은 인생관이다. 새로운 인생관은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없으며, 오직 자유롭게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유롭게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두 가지 길밖에 없다. 하나는 영적이고 내적인 길이며, 다른 하나는 경험적이고 외적인 길이다.
4어떤 사람들, 곧 소수는 일종의 예언자적 본능으로 그 가르침의 진리를 직감하고, 거기에 자신을 내맡기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다른 사람들, 곧 다수는 오랜 오류와 시도와 고통의 과정을 거친 뒤에야 그 가르침의 진리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게 된다.
5그리고 이러한 경험적이고 외적인 방법을 통해 오늘날 그리스도교인 대다수가 그 가르침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에 이르렀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를 그 참뜻대로 받아들이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된 그리스도교의 왜곡은 어째서 불가피했을까 하고 때로는 의아하게 여긴다.
6그리스도교가 참되고 왜곡되지 않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제시되었더라면, 대다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며, 오늘날 아시아의 민족들이 그러하듯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교를 왜곡된 형태로 받아들인 민족들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그 영향을 받았으며, 오랜 오류와 시도,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고통의 과정을 거쳐 이제 그리스도교를 그 참뜻대로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에 이르렀다.
7그리스도교가 변질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변질된 형태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것은, 씨앗이 싹트기 위해 일정한 시간 동안 땅속에 감추어져 있어야 하는 것만큼이나 필연적인 일이었다.
8그리스도교는 진리의 가르침인 동시에 예언이다. 18세기 전에 그리스도교는 사람들이 그에 따라 살아야 할 진리를 드러냈으며, 동시에 사람들이 그 진리에 따라 살지 않고 종전의 원칙에 따라 계속 살아갈 경우 인간의 삶이 어떻게 될지, 또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삶 속에서 실천할 경우 어떻게 될지를 예언했다.
9그리스도는 산상수훈에서 사람들의 삶을 이끌 원칙들을 제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바위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하겠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으나, 그 집은 무너지지 않았다. 바위 위에 기초를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이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하겠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치자 그 집은 무너졌고, 그 무너짐이 실로 컸다”(마태복음 7장 24–27절).
10그리고 이제 18세기가 지난 뒤 그 예언은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 전반을 따르지 않았고, 사회생활에 그 가르침을 적용하는 악에 대한 무저항도 실천하지 않았기에, 그리스도가 자신의 가르침을 이행하지 않는 자들에게 예고했던 피할 수 없는 파멸로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끌려 왔다.
11사람들은 흔히 악에 힘으로 저항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무시해도 되는 이론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삶 자체가 모든 사람에게 제기하는 것이며,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어떤 식으로든 답을 요구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외적으로 표방되기 시작한 이래,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문제는 여행자가 가던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질 때 마주하는 문제와 같다. 그는 계속 가야 하며, ‘나는 이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전처럼 계속 가겠다’고 말할 수 없다. 길은 하나였지만 이제 둘이 되었고, 그는 선택해야 한다.
12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알게 된 이래로는 ‘나는 전처럼 살겠으며, 악에 힘으로 저항할 것인가 저항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정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없다. 새로운 다툼이 일어날 때마다 누구나 필연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내가 악이라고 여기는 것에 힘으로 저항할 것인가, 저항하지 않을 것인가.
13악에 저항할 것인가 저항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람들 사이에 최초의 충돌이 일어났을 때 생겨났다. 모든 충돌은 다투는 당사자 각자가 악이라고 여기는 것에 힘으로 저항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이전에는, 한쪽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쪽은 악이라고 생각한다는 이유만으로 각자가 악이라고 여기는 것에 힘으로 저항하는 것이 분쟁을 해결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악에 힘으로 전혀 저항하지 않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14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나오기 전에는 악에 힘으로 저항하는 것이 분쟁을 해결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들은 그 생각에 따라 행동했으며, 다투는 당사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악이라고 여기는 것이 실제로 절대적인 악이라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키려 했다.
15이를 위해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악의 정의를 만들어 내고, 그것에 모든 사람이 구속되도록 하려 했다. 이러한 악의 정의는 때로는 초자연적인 수단을 통해 받았다고 여겨지는 법의 형태를 띠었고, 때로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통치자나 회의체의 명령이라는 형태를 띠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자신들이 행사하는 폭력은 모두가 악이라고 인정하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켰다.
16이 수단은 아주 오래전부터, 특히 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사용했으며, 오랫동안 그 불합리성이 드러나지 않았다.
17그러나 사람들이 세상에 살아온 세월이 길어지고 그들의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각자가 악이라고 여기는 것에 폭력으로 저항하는 일이 불합리하며, 그렇게 해도 분쟁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어떤 사람들이 악이라고 여기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악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에는 인간이 내리는 어떤 규정도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18기독교가 출현하던 당시에도, 기독교가 생겨난 로마 제국의 수많은 사람에게는 네로와 칼리굴라가 악이라고 여기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악이라고 여길 수는 없다는 사실이 분명했다. 이미 그때부터 사람들은 인간의 법이 신의 법이라고 선포되더라도 인간이 만든 것이며, 겉으로 아무리 위엄을 부여하더라도 오류가 없을 수는 없고,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를 원로원이라고 부르든 그 밖의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오류를 범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때에도 많은 사람이 이를 느끼고 이해했다. 바로 그때 그리스도는 자신의 가르침을 전했다. 그 가르침은 폭력으로 악에 저항하는 것을 금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모든 사람 사이의 분쟁을 끝낼 방도를 제시했다. 그것은 인류의 일부에게만 특정한 권위자들이 명하는 것에 맞서지 않고 복종할 의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따라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어떤 상황에서든 누구에게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의무를 지우는 것이었다.
19당시 이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은 극소수의 제자뿐이었다. 대다수 사람은, 특히 권력을 가진 모든 사람은 명목상 기독교를 받아들인 뒤에도 자신들이 악이라고 여기는 것에 폭력으로 저항한다는 원칙을 스스로 고수했다. 로마와 비잔틴의 황제들 아래에서도 그러했고, 그 뒤에도 계속 그러했다.
20권위에 따라 악을 규정하고 그것에 폭력으로 저항한다는 원칙의 불충분함은 기독교 초기에도 분명했지만, 로마 제국이 동등한 권위를 지닌 여러 국가로 분열되고, 그 국가들 사이에 적대 행위가 벌어지고 그 내부에서도 분쟁이 일어나면서 한층 더 명백해졌다.
21그러나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제시한 해결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저항해야 할 악에 대한 낡은 규정은 만인에게 구속력을 지니고 강제 수단으로 시행되는 법률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계속 내려졌다. 무엇을 악으로 여기고 폭력으로 저항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권위자는 어떤 때에는 교황이었고, 어떤 때에는 황제나 왕, 선출된 의회나 국민 전체였다. 그러나 국가 안팎에는 언제나, 신의 명령이라고 선포되거나 신성한 지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이 만든 법률, 또는 국민의 뜻을 대변한다고 여겨지는 제도를 자신에게 구속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기존의 권력자들이 악하다고 여기는 것을 선하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것과 똑같은 폭력으로 권력자들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22종교적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은 세속적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들과 기관들이 선하다고 여기는 것을 악하다고 여겼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고, 투쟁은 점점 더 격렬해졌다. 그리고 사람들이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한 세월이 길어질수록, 모두가 인정하는 악의 규정을 내릴 수 있는 외적 권위란 존재할 수 없으므로 폭력은 부적절한 수단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23사태는 열여덟 세기 동안 이런 식으로 이어져 왔고, 마침내 모든 사람을 구속하는 악에 대한 외적 정의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이 더없이 명백해진 오늘의 상황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그러한 보편적 정의를 찾아 확립하는 일이 가능하다고도, 심지어 바람직하다고도 믿지 않게 되었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악으로 여기는 것이 악임을 입증하려는 시도를 그만두고,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악으로 여긴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으며, 그들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도 더는 그들이 정해 놓은 악의 정의를 받아들여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 어찌할 수 없어서 복종할 뿐이다. 니스가 프랑스에, 로렌이 독일에, 보헤미아가 오스트리아에 편입되고, 폴란드가 분할되고, 아일랜드와 인도가 영국 정부의 지배를 받으며, 중국인들이 공격당하고 아프리카인들이 학살당하며, 미국인들이 중국인의 이민을 막고 러시아인들이 유대인을 박해하며, 지주들이 자신이 경작하지 않는 토지를 차지하고 자본가들이 남의 노동의 결실을 누리는 것은, 그것이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이로운 좋은 일이며 그 반대는 악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권력자들의 뜻이기 때문이다. 사태는 오늘날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더는 악에 저항한다는 구실도 없이 오직 자신의 이익이나 변덕 때문에 폭력을 행사하고,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은 과거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 폭력이 자신들을 악으로부터 지켜 주기 위해 행사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폭력에 굴복한다.
24로마인이나 중세인, 또는 내 기억 속에 있는 50년 전의 평범한 러시아인은 권력의 폭력이 자신을 악으로부터 지켜 주는 데 없어서는 안 되며, 세금, 공납, 농노제, 감옥, 매질, 크누트형, 처형, 군대와 전쟁은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라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확신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 모든 폭력 수단이 누구든 어떤 악으로부터든 지켜 준다고 믿는 사람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실제로 자신이 당하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 가담하기도 하는 이러한 폭력 행위 대부분이 그 자체로 크고 쓸모없는 악임을 분명히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드물다.
25오늘날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대중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빈둥거리는 관리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일이 무익하고 부당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나약하거나 타락한 사람들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유형 보내거나 요새에 가두어, 안전하고 나태하게 살면서 더욱 나약해지고 타락하게 할 뿐인 형벌을 내리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황폐와 파멸을 초래하며 아무런 정당한 근거도 없는 전쟁 준비와 전쟁이 무익하고 부당한 정도를 넘어 참으로 미친 짓이며 야만적인 짓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이러한 형태의 폭력은 계속되며, 그 무익함과 부당함과 잔혹함을 알아보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바로 그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50년 전에는 빈둥거리는 부자와 글을 모르는 노동자가, 한 사람은 영원히 놀고 다른 한 사람은 영원히 일해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가 하나님 자신이 정한 것이라고 똑같이 확신했다면, 오늘날에는 인구의 증가와 서적 및 교육의 보급 덕분에 유럽에서나 심지어 러시아에서조차,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이러한 상태의 정당성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한 번도 의심을 품어 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우리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부자들은 부자라는 사실 자체로 자신들이 죄가 있음을 알며, 옛날에 교회에 헌납하여 죄를 씻으려 했듯이 예술과 과학에 헌납하여 죄를 씻으려 한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절반이 넘는 수조차 기존 질서는 불의하며 반드시 파괴되거나 개혁되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선언한다. 러시아에 수백만 명이나 있는, 이른바 분리파라고 불리는 일군의 신앙인들은 참된 의미로 이해한 복음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기존 사회 질서가 부당하며 파괴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다른 사람들은 노동하는 사람들의 하층에서 생겨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또는 무정부주의 이론에 근거하여 그것을 부당하다고 여긴다. 폭력은 이제 그 유용성에 대한 믿음에 의존하지 않고, 다만 그것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는 사실과,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지배 계급이 그것을 조직하여 그 권력 아래 있는 사람들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게 한다는 사실에만 의존한다. 오늘날의 정부들은, 가장 전제적인 정부나 자유주의적인 정부나 할 것 없이 모두, 헤르첸이 그토록 적절하게 ‘전신을 갖춘 칭기즈 칸’이라고 불렀던 존재가 되었다. 다시 말해, 가장 극악한 폭정 외에는 아무런 원칙에도 근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동의 사회 활동을 하도록 과학이 발명한 모든 수단을 이용하여 동료 인간들을 예속시키고 억압하는 폭력 조직이 된 것이다.
26정부와 지배 계급은 이제 권리나 심지어 정의의 외양에조차 의지하지 않는다. 그들이 의지하는 것은 과학의 도움으로 극도로 완벽해진 정교한 조직이며, 그 때문에 모든 사람이 폭력의 고리에 갇혀 빠져나올 가망이 없게 된다. 오늘날 이 고리는 사슬의 고리들처럼 서로 연결된, 사람들에게 작용하는 네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27첫 번째이자 가장 오래된 방법은 위협이다. 이는 기존 국가 조직이 자유로운 공화국이든 가장 야만적인 전제 국가든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신성하고 불변하는 것으로 제시하고, 따라서 그것을 바꾸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가장 잔혹한 형벌을 가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옛날부터 그랬듯이 지금도 정부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사용된다. 러시아에서는 이른바 허무주의자들에게, 미국에서는 무정부주의자들에게, 프랑스에서는 제정주의자들과 정통왕조주의자들, 코뮌 지지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에게 사용된다.
28철도, 전신, 전화, 사진, 그리고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도 여러 해 동안 독방에 가두어 세상으로부터 숨겨진 채 죽어 가며 잊히게 함으로써 제거하는 고도로 완성된 수단, 그 밖에 정부가 이용하는 수많은 현대적 발명품은 그토록 큰 힘을 부여한다. 그리하여 일단 권력이 어느 손에 들어가면 정복 경찰과 비밀경찰, 행정 당국과 검사들, 간수들과 온갖 처형 집행자들이 너무나 열성적으로 제 일을 수행하므로, 정부가 아무리 잔혹하고 무분별하더라도 그것을 전복할 가망은 전혀 없다.
29두 번째 방법은 매수이다. 이는 세금을 통해 근면한 노동 인민의 재산을 약탈하고, 그 대가로 인민에 대한 억압을 지지하고 유지할 의무를 지는 관리들의 탐욕을 채워 주는 데 그 재산을 나누어 쓰는 것이다. 이렇게 매수된 관리들은 가장 높은 대신에서 가장 가난한 필경 서기에 이르기까지, 인민의 희생으로 살아간다는 동일한 이해관계로 결속된 사람들의 빈틈없는 그물망을 이룬다. 이들은 정부의 뜻을 더 고분고분하게 수행할수록 더 부유해진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일도 서슴지 않고, 모든 부문에서 말과 행동으로 정부의 폭력을 뒷받침한다. 그들 자신의 번영 역시 그 폭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30세 번째 방법은 인민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이는 인간의 도덕적 발전을 저지하고, 여러 가지 암시를 통해 인류 전체는 이미 벗어났지만 정부 권력의 토대가 되는 삶의 이상 속에 사람들을 붙들어 두는 것이다. 오늘날 이 최면 과정은 지극히 복잡한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아주 어린 시절에 시작되어 죽는 날까지 인간에게 계속 작용한다. 이는 바로 이 목적을 위해 설립된 의무교육 학교에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그곳에서는 현대 세계의 양심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조상들의 인생관을 아이들에게 주입한다. 국교가 있는 나라에서는 윗사람에게 복종할 의무와 함께, 교회의 교리문답에 담긴 무의미하고 신성모독적인 말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공화국에서는 애국심이라는 야만적 미신과, 똑같이 통치 권력에 복종해야 한다는 거짓된 의무를 가르친다.
31이 과정은 그 후에도 종교적 미신과 애국적 미신을 조장함으로써 계속된다.
32종교적 미신은 인민에게서 거둔 돈으로 사원을 세우고 행렬과 추도 의식과 축제를 마련하여 조장된다. 이런 것들은 회화와 건축과 음악과 향의 도움으로 인민을 도취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직자들을 지원함으로써 조장된다. 성직자들의 임무는 그들의 가르침, 예배의 장엄함, 설교, 그리고 출생과 죽음과 혼인 때 사생활에 개입하는 일을 통해 인민을 야만화하고 영구적인 몽매 상태에 붙들어 두는 것이다. 애국적 미신은 인민에게서 거둔 돈으로 국가적 경축 행사와 구경거리와 기념물과 축제를 마련함으로써 조장된다. 이는 사람들이 자기 민족과 국가 및 통치자의 세력 확대를 중시하고, 다른 민족들에 대해 적대감, 나아가 증오까지 느끼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전제 정부 아래에서는 인민을 계몽할 책의 인쇄와 배포를 직접 금지하며, 인민을 무기력한 잠에서 깨울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추방하거나 투옥한다. 더욱이 예외 없이 모든 정부 아래에서는 인민을 해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억제하고, 인민을 타락시키는 경향이 있는 모든 것을 장려한다. 이를테면 인민을 종교적 미신과 애국적 미신의 야만 상태에 붙들어 두려는 문학 작품, 온갖 관능적 오락, 구경거리, 서커스, 연극, 심지어는 담배와 술처럼 몽매 상태를 유발하는 물질적 수단까지 장려하는데, 이것들은 국가 수입의 주요 원천을 이룬다. 매춘까지도 장려되며, 대다수 국가에서는 정부가 이를 인정할 뿐 아니라 조직하기까지 한다. 세 번째 방법은 이와 같다.
33네 번째 방법은 앞의 세 가지 방법으로 몽매해지고 노예화된 모든 사람 가운데 일정한 수를 골라내어, 그들을 몽매하고 야만적으로 만드는 특별하고 더욱 강력한 수단에 노출시키고, 그렇게 하여 정부가 필요로 하는 온갖 잔혹하고 야만적인 행위를 수행하는 수동적 도구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사람들이 아직 명확하고 확고한 도덕 원칙을 형성할 겨를이 없었던 젊은 나이에 그들을 데려다가, 삶의 모든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조건, 곧 집과 가족과 친족과 유익한 노동으로부터 떼어 놓음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들은 병영에 함께 갇히고, 특수한 옷을 입으며, 고함과 북소리와 음악과 번쩍이는 물체의 자극을 받아 이 목적을 위해 고안된 일정한 동작들을 날마다 수행한다. 이로써 그들은 최면 상태에 빠져,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최면을 거는 자에게 복종하는 무감각한 기계에 불과한 존재가 된다. 최면에 걸리고 살상 무기로 무장하여, 통치 권력에 언제나 복종하고 그 명령에 따라 어떤 폭력 행위라도 저지를 준비가 되어 있는 이 신체적으로 건장한 청년들, 곧 오늘날과 같은 보편적 징병제 아래에서는 모든 청년들이 인간을 노예화하는 네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수단을 이룬다.
34이 방법으로 폭력의 순환 고리가 완성된다.
35위협과 매수와 최면은 사람들을 기꺼이 군인이 되려는 상태로 몰아넣는다. 군인들은 다시 그들을 처벌하고 약탈하며(그리고 그 전리품으로 관리들을 매수하며), 그들에게 최면을 걸어 때가 되면 그들을 또다시 바로 그런 군인으로 만들 수 있는 권력을 제공한다.
36순환 고리는 완성되었으며, 힘으로 그 고리를 끊고 나갈 가능성은 없다.
37어떤 사람들은 억압받는 사람들이 억압적인 정부를 무력으로 전복하고 그러한 폭력과 억압이 필요 없는 새 정부로 대체하면 폭력에서 벗어나거나 적어도 폭력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있으며, 그들의 노력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처지를 개선하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그들의 행동은 정부의 전제정치를 강화하는 데 이바지할 뿐이다. 그들의 노력은 정부가 권력을 강화할 그럴듯한 구실을 제공할 뿐이다.
381870년 프랑스에서처럼 정부에 특히 불리한 상황들이 겹치면 어떤 정부든 무력으로 전복되어 권력이 다른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새 권력이 옛 권력보다 덜 억압적인 경우는 드물 것이다. 오히려 권력을 빼앗겨 격분한 적들로부터 언제나 자신을 방어해야 하므로, 모든 혁명에서 늘 그랬듯이 더욱 전제적이고 잔혹해질 것이다.
39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개인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사회 조직을 악으로 여기고 무정부주의자가 모든 정부를 예외 없이 악으로 여기는 반면, 왕당파와 보수주의자와 자본가들은 어떠한 사회주의적 조직이나 공산주의적 조직 또는 무정부 상태도 악으로 여긴다. 그리고 이 모든 당파에는 사람들을 합의에 이르게 할 수단이 폭력 말고는 없다. 이들 가운데 어느 당파가 자기 계획을 실현하는 데 성공하든, 자기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현존하는 모든 폭력 수단에 의존해야 하며, 심지어 새로운 수단까지 고안해야 한다.
40억압받는 사람들은 다른 집단으로 바뀌고 강제는 새로운 형태를 띠겠지만, 폭력과 억압은 그대로이거나 더욱 잔혹해질 것이다. 투쟁으로 증오가 격화되고 새로운 억압 형태가 고안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혁명과 혁명 시도, 모든 음모와 폭력적인 정권 교체 뒤에는 언제나 그러했다. 모든 충돌은 어느 시점에 우연히 권력을 잡고 있는 자들의 손에 놓인 억압 수단을 강화할 뿐이다.
41우리 그리스도교 사회의 처지, 특히 그 안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는 이상들이 이를 놀라울 만큼 설득력 있게 입증한다.
42이제 인간 생활에서 정부 권력이 침범하지 않은 영역은 단 하나만 남아 있다. 그것은 가정과 경제의 영역, 곧 사생활과 노동의 영역이다. 그런데 이제는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의 노력 덕분에 이 영역마저 정부의 점진적인 침범을 받고 있다. 그리하여 개혁가들의 희망이 이루어진다면 노동과 여가, 주거와 의복과 음식까지 점차 정부가 정하고 규제하게 될 것이다.
4318세기에 걸친 느린 진보는 그리스도교 국가들로 하여금 그들이 회피해 온 문제를 다시금 결정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것인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사회생활에서 그에 뒤따르는 문제, 곧 악에 힘으로 저항할 것인가 저항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제시한 해답을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해답을 피할 수 없다. 사람들이 그물에 걸리듯 사로잡혀 있는 예속 상태에서 그들을 구해 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해답뿐이기 때문이다.
44그러나 이것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것은 그 처지의 비참함만이 아니다.
45이교적 조직의 그릇됨이 갈수록 더 드러나는 동안, 그리스도교의 진리는 갈수록 더 명백해졌다.
46영적 직관으로 진리를 깨달은 그리스도교 인류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18세기 동안 온갖 위협과 궁핍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 진리를 증언해 온 것은 헛되지 않았다. 그들은 순교를 통해 진리를 대중에게 전하고 그들의 마음에 새겨 넣었다.
47그리스도교는 이교적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입증하는 부정적인 방식으로만 인류의 의식 속에 스며든 것이 아니다. 그 가르침이 단순해지고 더욱 명료해지며 거기에 뒤섞여 있던 미신에서 벗어남으로써, 그리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전파됨으로써도 인류의 의식 속에 스며들었다.
48그리스도교의 열여덟 세기는 그것을 겉으로만 받아들인 사람들에게조차 아무런 영향 없이 흘러가지는 않았다. 이 열여덟 세기 동안 사람들은, 이제 인류의 발전과 더 이상 양립할 수 없는 이교적 삶을 계속 살아가면서도, 자기 처지의 비참함을 모두 뚜렷이 볼 뿐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서는 이 처지에서 벗어날 유일한 구원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참된 의미대로 실천하는 데 있다고 믿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들은 오직 이 믿음으로만 살아갈 수 있다. 구원의 시기와 방식에 관해서는 각 사회의 지적 발달과 편견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 그러나 현대 세계의 모든 사람은 우리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법을 실천하는 데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스도교의 초자연적 성격을 믿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재림이 임박한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이 믿게 될 때 구원이 오리라고 생각한다. 초자연적 그리스도교를 믿는 다른 이들은 교회를 통해 구원이 오리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모든 사람을 그 품 안으로 이끌어 들여 그리스도교적 덕목을 가르치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 세 번째 부류는 느리고 점진적인 진보를 통해 인류의 구원이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한다. 그 진보를 통해 우리 삶의 이교적 원리들이 자유, 평등, 박애의 원리, 곧 그리스도교적 원리로 대체되리라는 것이다. 사회혁명을 믿는 네 번째 부류는 폭력혁명을 통해 사람들이 재산의 공동 소유, 정부의 폐지, 개인적 생산 대신 집단적 생산을 강제로 받아들이게 될 때 구원이 오리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한 측면이 실현되리라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오늘날 모든 사람은 내면의 의식 속에서 기존의 쇠락한 이교적 질서를 단죄하며, 흔히 무의식적으로, 또 자신을 그리스도교에 적대적인 사람으로 여기면서도, 우리의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나 그 일부를 참된 의미대로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데서만 찾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49그 창시자가 말했듯이, 그리스도교는 대다수 사람에 의해 단번에 실현될 수 없다. 그것은 작은 씨앗에서 거대한 나무가 자라나듯 자라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 자라왔으며, 이제 아직 실제 생활에서는 아니지만 오늘날 사람들의 양심 속에서는 완전히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50이제는 언제나 영적 직관으로 그리스도교를 이해해 온 소수만이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는 그리스도교와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압도적 다수의 사람들까지도 그 참된 의미를 인정한다.
51개개인이 사생활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고, 그들이 서로를 판단할 때 따르는 행동의 기준에 귀를 기울여 보라. 그들이 공개적으로 하는 말뿐 아니라 부모와 보호자가 자신이 돌보는 젊은이들에게 해 주는 충고도 들어 보라. 그러면 폭력에 기초한 그들의 사회생활이 그리스도교적 진리의 실현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사생활에서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여기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교적 덕목이며, 악하다고 여기는 것은 오직 반그리스도교적 악덕임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며 인류에 대한 봉사에 삶을 바치는 사람들은 가장 훌륭한 사람들로 여겨진다.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은 가장 나쁜 사람들로 여겨진다.
52힘, 용기, 부와 같은 비그리스도교적 이상들이 그리스도교 정신에 물들지 않은 소수에게는 여전히 숭배받고 있지만, 이런 이상들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으며, 모든 사람에게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가장 훌륭한 사람들로 여겨지는 모든 이에게는 버림받고 있다.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고 모든 사람에게 구속력이 있다고 여기는 이상은 그리스도교적 이상 외에는 없다.
53우리 그리스도교 인류의 처지는, 그 모든 잔혹함과 인간의 타락을 외부에서 바라보면 참으로 끔찍하다. 그러나 그 내부, 곧 내면의 의식 속을 들여다보면 거기서 펼쳐지는 광경은 전혀 다르다.
54우리 삶의 모든 악은 오직 오랫동안 그래 왔다는 이유만으로 존재하는 듯하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대로 행동하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도, 달리 행동하는 법을 배울 시간을 아직 갖지 못한 것이다.
55모든 악은 사람들의 양심과는 무관한 어떤 원인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듯하다.
56이상하고 모순되게 보이지만, 오늘날 모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 떠받치고 있는 사회질서를 증오한다.
57기독교로 개종한 한 인도인의 놀라움을 서술한 사람은 막스 뮐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인도인은 기독교 교리의 본질을 깊이 받아들인 뒤 유럽에 와서 기독교인들의 실제 생활을 보았다. 그는 기독교 국가들에서 보리라고 기대했던 것과 현실이 완전히 대조되는 데 대한 놀라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우리가 우리의 신념과 행실 사이의 대조에 놀라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대조를 흐리게 하는 영향들이 우리에게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타협이나 양보 없이 기독교를 참된 의미로 이해한 그 인도인의 관점에서 우리의 삶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운 야만적인 잔혹 행위들을 바라보기만 하면, 우리가 흔히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그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모순들에 경악하게 될 것이다.
58전쟁 준비, 미트라예즈 기관총, 은에 금을 입힌 탄환, 어뢰, 그리고 적십자를 떠올려 보기만 하면 된다. 독방, 전기를 이용한 처형 실험, 그리고 수감자들의 위생과 건강에 대한 배려를, 부자들의 자선과 그 자선의 수혜자인 가난한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그들의 생활을 떠올려 보기만 하면 된다.
59그리고 이러한 불일치는 얼핏 생각할 수 있듯이 사람들이 실제로는 이교도이면서 기독교인인 척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무엇인가가 결여되어 있거나, 그들이 의식 속에서 이미 자신이 그렇다고 느끼며 진정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존재가 되지 못하도록 어떤 힘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억압, 불평등, 계급적 차별, 그리고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 가하는 온갖 잔혹 행위를 증오하는 척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진정으로 혐오한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거나, 어쩌면 그 모든 것을 존속시키면서 자신들에게는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것을 포기할 결심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60실제로 사람들에게 저마다 따로 물어보라. 자신의 일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봉급을 받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우리가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라며 그들 역시 우리와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전쟁을 벌이려고 대포와 어뢰와 그 밖의 살육 도구를 만드는 데 쓸 세금을 흔히 가난에 시달리는 민중에게서 거두는 것이, 또는 이러한 살육 도구를 만드는 일이나 자신과 남들을 살인 행위에 대비시키는 일에 평생을 바치고 봉급을 받는 것이 칭찬할 만하며 이 시대의 인간에게 걸맞은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라. 또 남의 재산을 빼앗는다는 이유로, 그것도 우리가 빼앗는 것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빼앗는다는 이유로, 또는 우리가 사람을 죽이려 드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이유로, 비참하고 그릇된 길에 들어섰으며 흔히 글도 모르고 술에 취해 있는 사람들을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학대하고 죽이는 일을 봉급을 받고 하는 것이 칭찬할 만하고 인간에게 걸맞으며 기독교인에게 적합한 일인지 물어보라. 봉급을 받고 민중에게 기독교가 아니라 자신도 어리석고 해롭다는 것을 아는 미신을 설교하는 것이 칭찬할 만하며 인간과 기독교인에게 걸맞은 일인지도 물어보라. 그리고 대지주들이 하듯이 자기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이웃이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채우는 데 쓰려는 것을 빼앗는 것이, 또는 공장주와 제조업자들이 하듯이 자기 재산을 늘리려고 이웃에게 힘에 부치는 고된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 또는 상인들이 하듯이 사람들의 가난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늘리는 것이 칭찬할 만하고 인간에게 걸맞은 일인지 물어보라. 그러면 누구나 개별적으로는, 특히 그 말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겨냥한 것이라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도 바로 그 모든 행위의 비열함을 아는 그 사람이, 누구의 강요도 받지 않고 자신의 자유의지로, 흔히 금전적 이익을 위해서도 아니라 그저 유치한 허영심 때문에, 도자기로 만든 십자 훈장 하나, 작은 리본 조각 하나, 몸에 달도록 허락된 술 장식 한 조각 때문에 군에 들어가거나 치안관이나 치안판사, 행정관, 대주교나 교회 사찰이 된다. 그러한 직무를 수행하면서 자신도 그 비열함과 수치스러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행위들을 저질러야 하는데도 그러하다.
61나는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지위를 정당하고 참으로 불가결한 것으로 여길 만한 이유가 있다고 자신 있게 입증하려 들 것임을 안다. 그들은 자신을 변호하면서 권력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국가의 기능은 인류의 복지에 불가결하고, 재산은 그리스도교에 어긋나지 않으며, 부자 청년에게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명한 것은 그가 완전해지기를 바랄 경우에 한한 것이고, 현존하는 재산 분배와 우리의 상업 제도는 언제나 지금 그대로 유지되어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이롭다는 등의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자신과 남을 속이려 해도, 그들은 모두 자신이 하는 일이 스스로 공언하는 모든 신념에 어긋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양심과 단둘이 남게 되면, 영혼 깊은 곳에서 그 일을 떠올리며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한다. 특히 자기 행위의 비열함을 지적받았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오늘날의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든 믿지 않든, 차르나 장관, 총독이나 행정관의 자격으로 다음과 같은 일에 가담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지 못할 수 없다. 대포를 만드는 데 쓰거나, 사치스럽게 살면서 아무 쓸모도 없을뿐더러 해롭기까지 한 게으른 관리들의 급료와 연금에 쓸 세금을 거두기 위해 가난한 집안의 마지막 암소를 빼앗는 일, 우리 자신이 타락시킨 어떤 사람을 감옥에 넣고 그 가족을 거리로 내모는 일, 전쟁에서 약탈하고 학살하는 일, 그리스도의 법 대신 야만적이고 우상 숭배적인 미신을 주입하는 일, 땅 한 조각 없는 사람의 소가 자기 땅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그 소를 압류하는 일, 공장에서 우연히 망가진 물건에 벌금을 매겨 노동자를 속여 빼앗는 일, 가난한 사람이 극심한 빈곤에 처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물건이든 그 값의 두 배를 내게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의 사람이라면 이 모든 행위가 비열하고 수치스러우며, 자신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모를 수 없다. 그들은 모두 그것을 안다.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잘못임을 안다. 그리고 자기 행위의 범죄성에 눈을 감게 하고 그런 행위를 저지르도록 몰아가는 힘에 맞설 능력만 있다면, 세상 그 무엇을 준다 해도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62현대의 삶이 도달한 모순의 극단은, 폭력의 마지막 수단이자 최종적인 표현인 보편적 징병제에서보다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이 없다.
63실로 우리가 이러한 전 국민 무장 상태와 현대 세계에 두루 스며 있는 그리스도교적 사상 및 감정 사이의 명백한 모순을 보지 못하는 것은, 오직 이 상태가 서서히 눈에 띄지 않게 이루어졌고, 정부들이 이를 유지하기 위해 위협과 매수, 야만화와 폭력의 온갖 수단을 동원해 왔기 때문이다.
64우리는 이 모순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사람들이 살육을 마치 명예로운 직업인 양 자발적으로 택하는 일, 가련한 사람들이 징병에 순응하는 일, 또는 의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은 나라에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생업을 버리고 병사를 모집하여 살인자로 훈련시키는 일에 담긴 끔찍한 어리석음과 부도덕함을 온전히 보지 못한다. 우리는 이들 모두가 그리스도인이거나 인도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원칙을 공언하는 사람들임을 안다. 그리고 그들 자신도 그렇게 함으로써 가장 광적이고 목적 없고 잔혹한 살인에 부분적인 책임을, 보편적 징병제 아래에서는 개인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그들은 모두 그 일을 한다.
65그뿐 아니라 의무복무제가 처음 생겨난 독일에서 카프리비는 이제껏 그토록 애써 감추어 온 사실을 드러내어 말했다. 곧 병사들이 죽여야 할 사람들은 외국인만이 아니라 자기 나라 사람들이기도 하며, 바로 병사들 자신이 나온 노동하는 민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고백도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지 못했고, 그들을 경악하게 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가며, 자신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에 순응한다.
66그뿐만이 아니다. 독일 황제는 최근에, 부주의하게 다가온 무방비 상태의 시민을 죽인 병사에게 감사를 표하고 상을 내림으로써 군대의 의무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냈다. 도덕성이 가장 낮은 사람들조차 언제나 비열하고 비겁하다고 여겨 온 행위에 상을 내림으로써, 빌헬름은 병사의 으뜸가는 의무, 곧 권력자들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의무가 사형집행인의 의무임을 보여 주었다. 그것도 사형선고를 받은 범죄자만 죽이는 직업적인 사형집행인이 아니라, 명령 한마디에 죄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든 도살할 준비가 된 자의 의무임을 보여 준 것이다.
67그것으로도 끝이 아니다. 1892년에, 다른 사람들은 생각만 하는 것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국가 권력의 골칫덩이, 바로 그 빌헬름은 병사들을 상대로 다음과 같은 연설을 공개적으로 했고, 이 연설은 이튿날 수천 개의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신병들이여! 그대들은 제단과 하나님의 사역자 앞에서 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대들은 아직 너무 어려서 여기서 한 말의 중요성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그대들에게 주어지는 명령과 지시에 복종하는 데 마음을 써라. 나의 근위대 청년들이여, 그대들은 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것은 그대들이 이제 나의 병사이며, 몸과 영혼을 나에게 바쳤다는 뜻이다. 이제 그대들에게 적은 오직 하나, 나의 적뿐이다. 사회주의적 선동이 만연한 오늘날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그대들 자신의 친족과 형제들, 심지어 그대들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향해 발포하라고 명령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이 없게 해 주시기를!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그대들은 주저 없이 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68이 사람은 분별 있는 통치자라면 누구나 생각하면서도 애써 감추는 것을 말로 표현한다. 그는 병사들이 자신을 섬기며 자신의 처분에 맡겨져 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들 자신의 형제와 아버지까지도 살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69그는 사람들이 군대에 들어가면서 감행할 준비를 갖추는 온갖 끔찍하고 범죄적인 행위와, 복종을 약속하면서 추락하는 치욕의 깊이를 더없이 잔혹한 말로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대담한 최면술사처럼 그는 최면에 걸린 사람이 얼마나 감각을 잃었는지 시험한다. 그는 그 사람의 피부에 벌겋게 달군 쇠를 갖다 댄다. 피부에서 연기가 나고 살갗이 타들어 가지만, 잠든 사람은 깨어나지 않는다.
70어리석고 권력에 취한 이 가련한 인간은 이 발언으로 현대인에게 신성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모욕한다. 그런데도 모든 그리스도인과 자유주의자와 교양 있는 사람들은 이 모욕에 분개하기는커녕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71마지막이자 가장 극단적인 시험이 가장 조잡한 형태로 사람들 앞에 놓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시험이라는 사실도, 거기에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하다. 그들은 노예처럼 복종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현대인이 신성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모욕하는 이 광기 어린 말들은 마땅히 분노를 불러일으켰으리라고 생각할 법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72유럽 전역의 모든 젊은이는 해마다 이 시험을 받으며, 극히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인간이 신성하게 여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저버린다. 그들은 모두 붉은색과 금색 장식이 달린 제복을 차려입은 미치광이라면 누구든 그 명령에 따라 자기 형제들, 심지어 자기 아버지까지도 죽일 용의가 있음을 밝히고, 어디서 언제 죽여야 하는지 지시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
73어떤 미개인에게나 신성하게 여기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고통을 겪을 각오가 되어 있는 것, 결코 하겠다고 동의하지 않을 일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명인에게 신성한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그에게 말한다. “너는 내 노예가 되어야 하며, 이 노예 신분 때문에 네 아버지까지도 죽여야 할 수 있다.” 그러면 그는, 흔히 아주 훌륭한 교육을 받고 대학에서 온갖 학문을 배운 사람인데도, 조용히 멍에 아래로 머리를 들이민다. 사람들은 그에게 광대 옷을 입히고, 우스꽝스럽게 뛰고 돌고 몸을 비틀고 절하고 죽이라고 명령한다. 그는 그 모든 일을 고분고분하게 한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그를 놓아주면, 그는 마치 몸을 한번 털어 버리듯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 이전과 다름없이 인간의 존엄과 자유와 평등과 박애에 관해 계속 논한다.
74“그렇다 해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사람들은 진심으로 당혹스러워하며 흔히 이렇게 묻는다. “모두가 저항한다면야 무슨 수가 있겠지만, 나 혼자서는 누구에게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채 고통만 당할 것이다.”
75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다. 사회적 인생관을 지닌 사람은 저항할 수 없다. 그의 삶의 목적은 자신의 안녕이다. 복종하는 것이 자신의 안녕에 더 이로우므로, 그는 복종한다.
76그들이 그에게 무슨 짓을 하든, 아무리 고문하고 모욕하든, 그는 복종할 것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홀로 폭력에 맞서 저항할 만한 원칙이 없다. 그리고 그들을 지배하는 자들은 그들이 서로 단결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끔찍한 파괴 무기의 발명이 전쟁을 종식시킬 것이라는 말이 흔히 나온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살육의 수단이 발전함에 따라, 국가적 인생관을 지닌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수단도 그에 맞추어 발전할 수 있다. 그들을 수천 명씩, 수백만 명씩 학살하고 갈기갈기 찢어 놓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분별없는 가축처럼 전쟁터로 행진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매를 맞아야 움직일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리본 조각이나 금실 장식을 달도록 허락받기만 하면 자랑스럽게 나아갈 것이다.
77그리고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등 사회 개혁가들은 자기 부모까지 죽이겠다고 선뜻 약속할 만큼 야만화된 이 무리로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런 구성원들로 도대체 어떤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겠는가? 휘고 썩은 널빤지는 어떻게 짜 맞추든 집을 지을 수 없다. 그런 사람들로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사회를 만드는 일도 그와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 그들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목자들의 고함과 채찍에 몰려다니는 가축 떼뿐이다. 실제로 그들은 그런 존재이다.
78그러므로 한편에는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고 자유, 평등, 박애의 원칙을 공언하면서도, 동시에 자유의 이름으로 가장 노예적인 굴욕에 복종할 태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평등의 이름으로는 오직 외적인 차이에 따라 사람들을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 동맹과 적으로 나누는 가장 조잡하고 무분별한 구분을 받아들이고, 박애의 이름으로는 자기 형제들을 살해할 태세가 되어 있는 것이다.[14]
79삶과 양심 사이의 모순, 그리고 그로부터 생겨나는 비참함은 극한에 이르러 더는 나아갈 수 없다. 개인과 가족과 사회의 안녕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던, 폭력에 기반한 국가적 생활 조직은 이제 자신이 세워진 바로 그 목적들을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보장하려던 안녕을 완전히 포기하고 상실하게 만들었다.
80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세대에게서 예언의 전반부가 이루어졌다. 이제 그들의 후손들은 후반부의 진실성을 경험으로 시험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절대적 필연에 직면하게 되었다.
81주석
[14] 영국인과 미국인 같은 일부 국민들에게 병역이 의무가 아니라는 사실은(벌써 그곳에서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들려오지만),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노예적 예속이라는 원칙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여기서는 각자가 가서 죽이거나 죽임을 당해야 하고, 그곳에서는 각자가 자기 노동의 결실을 내놓아 군인들을 모집하고 훈련하는 비용을 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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